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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원인을 완전히 잘못 짚었는데도, 그 오해에서 나온 대응책 하나만큼은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흑사병 의학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 글은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믿었고, 그 믿음이 실제로 어떤 조치로 이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흑사병 의학, 원인을 오해하다 — 체액설과 나쁜 공기
14세기 유럽 의사들은 병의 원인을 체액설로 설명했습니다. 체액설이란 사람 몸에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라는 네 가지 체액이 흐르고 있으며, 이 균형이 무너지면 병이 생긴다고 보는 고대 그리스 이래의 의학 이론입니다. 이 틀 안에서 흑사병은 나쁜 공기, 즉 미아즈마가 체내 체액의 균형을 무너뜨려 생기는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로서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나쁜 냄새가 나는 공기를 병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도 나름의 논리적 추론이었습니다. 실제로 시신이 방치되고 위생 상태가 나빴던 흑사병 시기에는 악취가 진동하는 곳일수록 감염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 설명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시기 유럽 의사들은 나쁜 공기를 막기 위해 새 부리 모양의 가면을 쓰기도 했습니다. 가면의 부리 부분에는 향료나 말린 꽃을 채워 넣었는데, 나쁜 냄새 자체가 병을 옮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향기로운 물질로 공기를 정화하려 한 것입니다. 지금 보면 기이한 복장이지만, 당시의 의학 지식 안에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역 장비였던 셈입니다.
사혈과 방혈 — 체액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
체액설을 믿었던 의사들이 택한 대표적인 치료법이 사혈이었습니다. 사혈이란 몸속에 넘치는 체액, 특히 혈액을 일부러 뽑아내 균형을 되찾으려던 치료법을 뜻합니다. 흑사병 환자에게도 이 방법이 광범위하게 적용됐는데, 이미 체력이 약해진 환자에게서 피를 뽑아내는 처치는 회복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사들은 환자 몸에 생긴 가래톳, 즉 림프절이 부풀어 오른 멍울을 직접 절개해 고름을 짜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위생적이지 않은 처치였지만, 당시로서는 몸속의 나쁜 것을 밖으로 빼낸다는 체액설의 논리에 충실한 방법이었습니다.
재직중인 직장 생활중에 때론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제가 맡고 있는 업무이다보니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요. 사고의 원인을 잘못 짚으면 아무리 열심히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사혈이 바로 그런 사례로 보입니다. 원인 진단이 틀리면, 그 진단에 따라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대응책도 효과를 내기는커녕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걸 흑사병 시기의 의료가 잘 보여 줍니다.
라구사의 검역, 40일의 기원
원인 진단은 틀렸지만, 이 시기에 만들어진 대응책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1377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던 도시 라구사, 지금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세계 최초로 공식적인 검역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감염 지역에서 온 사람과 배는 감염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섬에서 일정 기간 머물러야 했습니다(출처: 경향신문).
처음에는 이 격리 기간이 30일이어서 '트렌티노'라 불렸지만, 1397년 40일로 늘어나면서 이탈리아어로 40을 뜻하는 '콰란타(Quaranta)'를 따 '콰란티노'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검역을 뜻하는 영어 단어 쿼런틴(Quarantine)은 바로 이 40일에서 나온 말입니다.
라구사 시의회는 이 조치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감염 지역을 다녀온 시민과 외지인 모두 도시 성벽 밖 무인도나 별도로 마련된 시설에서 정해진 기간을 보내야 했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이나 구금 같은 처벌까지 뒤따랐습니다.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법으로 강제된 공중보건 조치였다는 뜻입니다.
원인은 몰랐지만, 라구사 사람들은 감염 지역에서 오는 사람을 일정 기간 격리하면 병의 확산을 늦출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아챘습니다. 체액의 불균형이라는 틀린 이론과, 격리라는 옳은 대응이 같은 시대에 나란히 존재했던 셈입니다.
직원들과 사내 업무 시행에 있어서 원인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경험적으로 효과가 확인된 조치라면 일단 시행하는 게 나을 때가 있다는 걸 느낍니다. 라구사의 검역 제도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왜 격리가 효과가 있는지는 몰랐어도, 격리를 하면 확산이 줄어든다는 사실만큼은 반복된 경험으로 확인했고, 그 판단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원칙으로 남아 있습니다.
체액설과 사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라구사에서 시작된 40일의 격리라는 발상만큼은 이름 그대로 지금도 전 세계 공중보건 제도의 뼈대로 남아 있습니다.
원인을 정확히 몰라도 경험으로 확인된 대응은 지켜 나가고, 틀린 이론에 근거한 조치는 과감히 버리는 태도. 흑사병이라는 재앙 속에서 사람들이 결국 배운 것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본 글은 역사 자료와 언론 기사 등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도입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