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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 벽 전체가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그 빛의 정체는 대부분 유리와 금박이었을 겁니다. 황금빛 모자이크는 비잔틴 제국에서 시작해 베네치아로 건너오며 유럽 성당 건축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 글은 그 기술과 확산 과정을, 실제로 남아 있는 성당 두 곳을 통해 살펴봅니다.

황금빛 모자이크의 시작 — 라벤나 산비탈레 성당
비잔틴 양식의 황금 모자이크가 온전한 형태로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아니라 이탈리아 라벤나입니다. 산비탈레 성당은 526년 주교 에클레시우스가 공사를 시작해 547년 주교 막시미아누스 때 완공됐습니다. 건축 비용은 은행가 율리아누스 아르겐타리우스가 댔는데, 그는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라벤나에 보낸 특사로 추정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성당 제단 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가 신하들을 거느린 모자이크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출처: 위키백과). 이 작품은 콘스탄티노폴리스 바깥에 남아 있는 비잔틴 모자이크 가운데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사례로 꼽힙니다.
이 성당의 평면은 팔각형입니다. 로마 건축에서 흔히 쓰이던 돔과 계단탑 요소에, 다각형 후진과 폭이 좁은 벽돌 같은 비잔틴 양식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비잔틴 양식이란 4세기 이후 동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건축·미술 양식을 뜻하며, 화려한 색유리 모자이크와 돔 구조가 특징입니다.
베네치아로 건너간 비잔틴의 빛 — 산마르코 대성당
라벤나에서 완성된 이 기술은 이후 베네치아로 건너갔습니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1063년 무렵 골격이 세워지기 시작해 1094년 봉헌됐고, 내부를 뒤덮은 황금 모자이크는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완성됐습니다. 완성된 모자이크의 면적은 약 8,000제곱미터에 달해, 성당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에 가깝습니다.
이 화려함 때문에 산마르코 대성당은 11세기에 이미 '황금 교회'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출처: 나무위키). 건물의 설계 자체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던 성사도 대성당을 본떴다고 전해지며,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뒤 약탈해 온 대리석과 유물 일부도 이 성당을 장식하는 데 쓰였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지중해 무역으로 쌓은 부를 이 성당 하나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었습니다. 국가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를 기리는 성당이었던 만큼, 도시의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이 한 명의 은행가가 후원한 결과물이었다면, 산마르코 대성당은 도시 전체가 몇 세기에 걸쳐 완성해 낸 작품이었던 셈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업무가 회사의 전반적인 관리업무이다 보니 한 세대 안에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다른 종류의 계획을 필요로 하는지 잘 실감합니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 공사가 수백 년에 걸쳐 이어졌다는 것은,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기준과 기록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리와 금박이 만든 빛의 과학
이 모자이크를 이루는 작은 조각을 테세라(Tessera)라고 부릅니다. 테세라란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작은 조각을 뜻하며, 황금 모자이크의 테세라는 얇은 금박을 두 장의 유리 사이에 끼워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조각은 표면이 미세하게 울퉁불퉁해, 빛이 여러 각도로 반사되며 은은하게 흔들리는 효과를 냈습니다.
장인들은 테세라를 완전히 평평하게 붙이지 않고 벽면에 대해 조금씩 기울여 붙였습니다. 촛불이나 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방향을 미리 계산해, 신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도록 각도를 조정한 것입니다.
이전회사에서 전산설비 및 통신 장비를 설치하던 시절, 신호가 가장 잘 전달되는 각도를 찾기 위해 안테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곤 했습니다. 수백 년 전 모자이크 장인들이 빛의 반사각을 계산해 테세라를 붙인 방식도, 원리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물은 예술과 통신 장비로 전혀 달랐지만, 각도 하나로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만큼은 같았을 겁니다.
성당 벽을 가득 채운 금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빛의 각도까지 계산한 정교한 기술의 결과물이었던 셈입니다.
라벤나에서 시작된 기법이 베네치아에서 규모를 키우고, 다시 유럽 각지의 성당으로 퍼져 나가는 데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기술 하나가 자리를 옮기고 다듬어지는 데도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빠른 기술 확산 속도와 비교해 보면 새삼 낯설게 느껴집니다.
※ 본 글은 역사 자료와 국제기구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도입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