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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한 줌이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 향신료를 향한 열망은 결국 유럽 각국을 새로운 항로 개척으로, 나아가 섬 하나를 두고 벌어진 국가 간 거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글은 향신료가 어떻게 세계 지도를 바꾸는 계기가 됐는지를,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후추 전쟁의 시작 — 베네치아의 독점과 새 항로
중세 유럽에서 후추와 사프란, 육두구 같은 향신료는 조미료가 아니라 재산이었습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육로와 바닷길을 거쳐 유럽까지 오는 동안 여러 상인의 손을 거쳤고, 그때마다 값이 불어났습니다. 특히 사프란과 육두구, 정향은 생산지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같은 무게의 금에 맞먹는 값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15세기까지 이 무역로의 마지막 관문은 베네치아 상인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향신료를 사들여 지중해를 거쳐 유럽 각지로 되파는 중계 구조였기 때문에, 베네치아를 거치는 순간 값이 또 한 번 크게 뛰었습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베네치아를 거치지 않고 향신료를 직접 구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이 필요가 대항해시대를 열었습니다.
바스쿠다가마, 향신료 제도를 향한 첫 항해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쿠 다가마는 1498년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습니다. 유럽에서 바닷길로 인도까지 이어지는 항로를 처음으로 연 것입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베네치아를 거치지 않고 직접 향신료를 유럽으로 들여올 수 있게 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스페인은 반대 방향인 서쪽 바닷길로 향신료 산지에 닿으려 했습니다. 콜럼버스의 항해도 애초 목적은 아시아의 향신료였지만, 실제로 닿은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두 나라의 항로 경쟁이 지나치게 격해지자, 1494년 교황의 중재로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어 신대륙과 항로를 나눠 갖기로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네덜란드가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세우면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동인도회사란 아시아 무역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도록 국가가 특허를 내준 민간 회사를 뜻하며, 오늘날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춘 초기 사례로도 꼽힙니다. VOC는 1667년 무렵 정향과 육두구가 나던 몰루카 제도, 이른바 향신료 제도의 무역독점권을 사실상 완성했습니다. 향신료 제도란 오늘날 인도네시아 동부에 위치한 몰루카 제도를 가리키는 옛 이름입니다.
저는 통신 장비를 관리하던 시절, 특정 공급처 하나에 전량을 의존하면 반드시 병목이 생긴다는 걸 여러 번 겪었습니다. 베네치아 독점을 피하려던 유럽 각국의 움직임도 결국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급망이 한 곳에 집중될수록, 그 경로를 대체하려는 시도도 그만큼 커지기 마련입니다.
룬섬과 맨해튼 — 향신료가 남긴 세계지도
네덜란드의 향신료 제도 독점에는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육두구 산지인 반다 제도의 작은 섬, 룬섬(Run)만은 영국이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는 이 섬을 두고 오랫동안 다퉜고, 결론은 뜻밖의 방식으로 났습니다.
1667년 제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을 끝낸 브레다 조약에서, 영국은 룬섬에 대한 권리를 네덜란드에 넘기는 대신 북아메리카의 뉴네덜란드, 즉 오늘날의 뉴욕 맨해튼을 차지했습니다(출처: 위키백과). 넓이로 보면 맨해튼이 룬섬보다 열 배 넘게 컸지만, 당시에는 육두구 무역의 가치가 그만큼 크게 평가됐습니다(출처: 제주의소리).
당시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거래였습니다. 육두구는 같은 무게의 금과 맞먹는 값에 팔렸고, 맨해튼은 모피 교역소가 딸린 변방의 식민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3백여 년이 지난 지금, 맨해튼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됐고 룬섬은 여전히 외딴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
경험상 직장생활을 할 때 보면 이따금 지금 당장 이익으로 보이는 선택이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브레다 조약 당시 두 나라 모두 자신의 선택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겠지만,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향신료 하나가 만들어 낸 이 우연한 거래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역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늘날 마트 진열대에서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후추 한 병에는, 사실 이런 국가 간 거래와 항로 경쟁의 역사가 통째로 담겨 있는 셈입니다. 작은 씨앗 하나의 가격이 한 나라의 무역 전략과 도시의 운명까지 갈랐다는 사실은, 지금 봐도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 본 글은 역사 자료와 위키백과 등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도입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