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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시간을 알 방법이 사라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중세 시계의 역사는 이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의 연속이었고, 그 결과 지금도 실제로 작동하는 636년 된 시계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물시계와 해시계의 한계에서 시작해, 기계식 시계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중세 시계, 물시계와 해시계의 한계
해시계는 막대기의 그림자로 시간을 가늠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였습니다. 해시계의 그림자 막대는 그노몬이라 불리는데, 그노몬의 그림자가 눈금판 위를 지나가는 위치로 시각을 읽었습니다. 구조는 단순했지만 태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흐린 날이나 밤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한 것이 물시계였는데,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의 양으로 시간을 재는 방식이었습니다. 물시계는 클렙시드라라고도 불렸으며,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도 이미 사용되던 오래된 기술이었습니다. 물통에 새겨진 눈금이 낮아지는 정도를 보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물시계도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겨울철 물이 얼면 작동이 멈췄고, 물이 새거나 증발하면 오차가 쌓였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정해진 시간마다 기도를 올려야 했기 때문에, 날씨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시간을 잴 방법이 절실했습니다.
탈진기의 발명 — 톱니바퀴가 시간을 쪼개다
이 문제를 해결한 발명품이 탈진기입니다. 탈진기란 톱니바퀴가 일정한 속도로만 돌아가도록 제어하는 장치를 말하며, 13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EPFL). 이전까지 시간은 물이 흐르듯 연속적인 흐름으로만 측정됐지만, 탈진기의 등장으로 시간을 일정한 간격으로 쪼개어 재는 방식이 처음 가능해졌습니다.
초기 탈진기는 폴리엇과 함께 작동했습니다. 폴리엇이란 좌우 끝에 추를 매단 수평 막대를 뜻하며, 이 막대가 좌우로 흔들리는 주기에 맞춰 톱니바퀴가 한 칸씩 움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추의 위치를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옮기면 흔들리는 속도가 달라져, 시계의 빠르기를 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옛직장에서 통신 장비를 관리하던 시절에 여러 장비가 정확히 같은 박자로 신호를 주고받도록 맞추는 작업을 자주 했습니다. 탈진기가 톱니바퀴의 회전을 일정한 간격으로 쪼개 주는 원리도, 결국 무언가의 흐름을 규칙적인 박자로 통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연속된 흐름을 일정한 단위로 끊어 관리할 수 있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훨씬 정교한 제어가 가능해집니다.
솔즈베리 대성당 시계 — 636년째 돌아가는 톱니바퀴
이 기술이 실제로 적용된 가장 오래된 사례가 잉글랜드 솔즈베리 대성당의 시계입니다. 1386년에 제작된 이 시계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계식 시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위키백과).
흥미롭게도 이 시계에는 애초에 시계 문자반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시각을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정해진 시간마다 종을 쳐서 수도사와 주민들에게 기도 시간이나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먼저였던 셈입니다.
이 시계는 64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몇 차례 수리와 부품 교체를 거쳤지만, 원래의 탈진기와 폴리엇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체코 프라하에는 1410년에 만들어진 천문시계가 세워졌는데, 이는 지금까지 작동 중인 천문시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례로 꼽힙니다. 솔즈베리의 단순한 종소리 시계와 프라하의 화려한 천문시계는, 같은 탈진기 기술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발전해 나간 두 갈래를 보여 줍니다.
솔즈베리 시계가 수백 년째 같은 방식으로 종을 울려 온 것처럼,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신호 하나가 있으면 그 위에 훨씬 복잡한 일정도 무리 없이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물시계와 해시계가 자연의 흐름에 의존했다면, 탈진기는 인간이 만든 톱니바퀴로 시간 자체를 통제하기 시작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전환점에서 만들어진 톱니바퀴 하나가, 600년이 넘도록 지금도 똑같은 박자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해와 물에 기대던 시간 측정이 톱니바퀴 하나로 옮겨 가면서, 인간은 처음으로 날씨와 계절에 좌우되지 않는 시간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 변화가 만들어 낸 규칙적인 박자는, 이후 공장의 근무 시간부터 오늘날의 통신 장비 동기화 신호까지 형태를 바꿔 가며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본 글은 역사 자료와 위키백과 등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도입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