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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인은 씻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절반만 맞습니다. 중세 목욕탕은 한동안 도시마다 성행하다가, 어느 한 시점의 의학적 판단 하나로 순식간에 몰락했습니다. 이 글은 실제로 남아 있는 그 판단의 근거와 시점을 통해, 목욕 문화가 어떻게 뒤바뀌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중세 목욕탕, 생각보다 자주 씻었던 사람들
중세 유럽 도시에는 여러 곳의 공중목욕탕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평민들은 대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신 목욕을 했는데, 이는 교회에 가기 전날 몸을 씻는 관습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정에서는 나무로 만든 큰 목욕통에 물을 데워 붓고, 가족이 차례로 그 물을 나눠 쓰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도시의 공중목욕탕은 단순히 씻는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교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일부 목욕탕이 매춘업을 겸하게 되면서, 목욕탕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목욕탕은 계층에 따라서도 이용 방식이 달랐습니다. 부유한 가문은 개별 목욕통을 갖추고 하인이 물을 데워 나르는 방식으로 집에서 씻었고, 서민들은 도시 곳곳의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목욕물 자체가 귀했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한 물을 순서대로 나눠 쓰는 것도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산업안전 업무를 하면서, 원래 좋은 목적으로 시작된 시설도 관리가 느슨해지면 본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걸 자주 봅니다. 공중목욕탕이 위생 시설에서 점차 부정적 이미지로 옮겨 간 과정도, 관리와 규율이 느슨해질 때 벌어지는 일과 비슷해 보입니다.
파리대학교 의학교수들의 결론 — 모공설
목욕 문화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흑사병이었습니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이듬해인 1348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는 파리대학교 의학 교수들에게 이 병의 원인을 규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교수들은 뜨거운 목욕이 몸을 이완시키고 피부에 틈을 열어, 역병을 일으키는 나쁜 공기가 몸속으로 쉽게 침투하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출처: 경향신문).
이 결론은 오늘날의 의학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틀린 진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국왕이 의뢰하고 최고 권위의 의학 교수들이 내린 공식 결론이었기에, 이후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려면 목욕을 피해야 한다는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시기 유행하던 체액설과 미아즈마 이론에 비춰 보면, 이 결론은 나름대로 논리적인 추론이었습니다. 뜨거운 물이 몸의 체액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열린 모공으로 나쁜 공기가 들어온다는 설명은 당대의 의학 체계 안에서는 상당히 정합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종 보게 되는 것이 권위 있는 곳에서 내린 결론일수록 사람들이 의심 없이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 입니다. 파리대학교 교수들의 이 결론도 국왕이 직접 지시했다는 권위 때문에 더 쉽게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판단의 권위가 클수록, 그 판단이 틀렸을 때 되돌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집니다.
200년간 이어진 목욕 기피, 그리고 이후
이 모공설은 이후 무려 200년 가까이 설득력 있는 의학 지식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람들은 공중목욕탕은 물론 집에서도 전신을 씻는 일을 꺼리게 됐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목욕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목욕 자체가 위험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다만 최근 연구에서는 이 시기에도 사람들이 완전히 씻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재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신 목욕은 피했지만 집에서 부분적으로 몸을 씻거나 개울과 강에서 몸을 헹구는 습관은 상당 부분 유지됐다는 것입니다. 즉 완전한 위생 포기가 아니라, 특정 방식의 목욕만 선택적으로 기피했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공중목욕탕이 다시 일상적인 시설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9세기 들어 세균설이 자리 잡고 위생 개념이 재정립되면서, 목욕은 다시 건강을 지키는 행위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한 번 잘못 자리 잡은 관행을 되돌리는 데는 그 관행이 자리 잡는 데 걸린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공설이 자리 잡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 오해를 걷어내고 다시 목욕을 권장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틀린 결정 하나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무겁게 남는지를 이 역사가 잘 보여 줍니다.
씻지 않는 것이 오히려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 믿었던 시대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위생 상식도 언젠가는 다시 검토될 수 있다는 걸 새삼 일깨워 줍니다.
※ 본 글은 역사 자료와 언론 기사 등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도입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