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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당인데 왜 어떤 곳은 벽이 두껍고 창이 작으며, 어떤 곳은 벽 대신 유리로 가득 차 있을까요. 그 답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글은 이 전환이 실제로 어느 건물에서, 누구에 의해 시작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로마네스크 고딕, 두 시대를 가르는 벽의 두께
로마네스크 양식이란 10~12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반원형 아치와 두꺼운 석조 벽이 특징입니다. 지붕의 무게를 벽 전체가 고르게 떠받쳐야 했기 때문에, 벽은 두껍고 창은 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당 내부가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를 띠는 것도 이 구조 때문입니다.
이 무게 분산 방식을 바꾼 결정적인 요소가 뾰족아치입니다. 뾰족아치란 반원 대신 위가 뾰족한 형태의 아치를 뜻하며, 이 형태는 하중을 옆으로 덜 밀어내고 아래로 더 곧게 전달합니다. 덕분에 벽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줄고, 그만큼 벽을 얇게 만들거나 큰 창을 낼 여유가 생겼습니다.
로마네스크 시기를 대표하는 건물로는 프랑스의 클뤼니 수도원 성당(클뤼니 III)이 꼽힙니다. 1088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 성당은 완공 당시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이 다시 지어지기 전까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습니다. 그만큼 웅장했지만, 여전히 두꺼운 벽과 작은 창이라는 로마네스크의 한계 안에 있었습니다.
더럼 대성당의 리브볼트 — 천장이 가벼워지다
이 전환의 초기 흔적은 잉글랜드 더럼 대성당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93년부터 1104년 사이에 지어진 이 성당은 리브볼트를 사용한 가장 이른 사례로 꼽힙니다(출처: 요다위키). 리브볼트란 천장을 갈비뼈 모양의 돌 골조로 먼저 짜고, 그 사이를 얇은 돌판으로 채우는 방식을 말합니다.
기존 로마네스크의 통짜 석조 천장은 무게가 그대로 벽 전체에 실렸지만, 리브볼트는 하중을 몇 개의 골조 라인으로 모아 특정 기둥으로 흘려보냈습니다. 이는 마치 짐을 바닥 전체에 흩어 놓는 대신 몇 개의 튼튼한 지지대에 집중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였습니다. 벽이 하중을 덜 짊어지게 되면서, 벽 자체의 두께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더럼 대성당의 리브볼트는 아직 완전한 고딕 양식은 아니었습니다. 뾰족아치 없이 반원형 아치와 함께 사용됐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를 로마네스크와 고딕 사이의 과도기적 실험으로 봅니다. 비슷한 시기 노르망디의 레세이 수도원에서도 리브볼트의 초기 형태가 나타났는데, 이는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오가던 건축가와 석공들이 기술을 함께 주고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0여년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통신 중계소 설비 관리하던 시절, 하중이나 부하를 특정 지점에 몰아 두면 나머지 구간의 부담이 확 줄어드는 걸 자주 확인했습니다. 리브볼트가 천장의 무게를 몇 개의 골조로 몰아준 방식도 같은 원리로 보입니다. 힘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것과 특정 지점에 집중시켜 관리하는 것, 이 두 전략 중 무엇이 나은지는 결국 구조 전체의 설계에 달려 있습니다.
생드니, 쉬제 수도원장이 빛을 들이다
리브볼트와 뾰족아치가 하나의 완성된 양식으로 묶인 곳은 프랑스 생드니 수도원 성당입니다. 1135년부터 1140년 사이, 수도원장 쉬제는 기존 로마네스크 성당을 헐지 않고 서쪽 파사드와 제단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재건했습니다. 그는 이 새로운 건축을 '빛의 신학'이라 부르며, 벽을 최소화하고 그 자리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우려 했습니다(출처: 나무위키).
쉬제는 신성한 빛이 물리적인 공간을 채울 때 신자들이 신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뾰족아치와 리브볼트로 벽의 부담을 줄인 덕분에, 이전이라면 불가능했던 크기의 창을 낼 수 있었고 그 자리를 색유리로 채웠습니다. 당대 사람들은 이 낯선 양식을 '현대 양식(Opus modernum)'이라 불렀는데, 훗날 이 양식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된 '고딕'은 오히려 후대에 비판적인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시설의 관리를 맡고 있는 업무라 기존 시설을 완전히 멈추지 않은 채 부분적으로 재건축을 진행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잘 압니다. 쉬제가 생드니 성당을 한 번에 허물지 않고 구역별로 순차 개축한 방식은, 지금의 무중단 리모델링 공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오래된 구조와 새 구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부담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더럼의 리브볼트와 생드니의 뾰족아치, 스테인드글라스가 한데 모이면서 로마네스크의 무거운 벽은 고딕의 가벼운 빛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하나의 기술적 개선이 신학적 의미와 만나 완전히 새로운 양식으로 굳어진 셈입니다.
이후 이 양식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과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이어지며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벽 두께 하나의 차이가 결국 성당 전체의 분위기와, 나아가 한 시대의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은 셈입니다.
※ 본 글은 역사 자료와 나무위키·위키백과 등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도입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하였습니다.